역사 근거
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오주 '태원(胎元)'에 대한 기록
조선 왕실은 왕과 세자의 명운을 살필 때 네 기둥에 더해 잉태의 기둥까지 실록에 남겼습니다. 실록 곳곳에 '오주(五柱)'가 그대로 등장합니다.

推官等, 以其供啓曰: "淸禮欲歸本土, 以害我國家云, 正合臣等平昔所料"
傳曰: "淸禮於何, 得聞子五柱乎? 言根出處, 幷推問"
— 인조실록 中 원문 발췌
"청례가 어디서 나의 오주(五柱)를 들었는가? 말의 출처를 아울러 상세히 추문하도록 하라."
— 인조실록 18권, 인조 6년 3월 4일 을축 1/1 기사 · 1628년 명 천계(天啓) 8년

至於金碩義江都書札往復之事及崔瑤 趙珽 張世哲
李佶 趙有道等參謀之事,
皆因仁城君聞之, 而李士珪推卜諸賊五柱云
— 인조실록 中 원문 발췌
"이사규(李士珪)가 역적들의 오주(五柱)를 점쳤다고 하였으며…"
(이하생략)
— 인조실록 18권, 인조 6년 3월 4일 을축 1/1 기사 · 1628년 명 천계(天啓) 8년

傳曰: "今下揀擇女十九人五柱, 令觀象監提調, 同內官推擇"
— 연산군일기 中 원문 발췌
"전교하기를, 이제 간택(揀擇)한 여자 19인의 오주(五柱)를 내리니, 관상감 제조(觀象監提調)로 하여금 내관(內官)과 함께 추택(推擇)하게 하라." 하였다.
… (이하생략)
— 연산군일기 59권, 연산 11년 8월 18일 경오 2/5 기사 · 1505년 명 홍치(弘治) 18년
출처 ·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국역·원문

















